엄마를 닮아서 다행이야

성격적인 부분이야 키우면서 고민해야하는것이지만 외모는 나오면 그걸로 끝이라 잘 나오길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성형에 대해 극도로 거부감이 있어서 쌍커플수술조차도 안좋게 생각하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만드는건 아에 생각도 안했다.

다른 부분은 다 걱정이 없지만 눈은 날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이녀석 눈이 엄청 크다. 태어나자마자 몇시간 후에 바로 눈을 떴는데 눈이 커서 마음 깊이 안도했었다.

키는 사실 작아도 별 신경 안쓰인다. 내가 평생을 작게 살아보니 불편한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170만 넘으면 무난하다고 생각이 든다. 뭐 더 작아도 상관 없음.

지금 조금 걱정되는 부분은 머리카락이다. 나를 닮아 M자형 머리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모든 면에서 외모는 다 엄마를 닮았으면 좋겠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나를 참 안좋아한다. 성격뿐만이아니라 외모도 그닥 자기애가 없다.

그래서 첫인상이 엄마를 똑 닮아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성격도 유전인가?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작고 약하고 겁많고 소심한성격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늘 우두머리(?)를 쫓아다니는 시다바리짓을 많이 했다. 심지어 중학생 때는 일진 애들한테 끌려다니며 ‘라이코스’라는 참신한 별명까지 얻게되었다.

개 한마리가 주인이 시키는 것을 착실히 이행하고 "잘했어 라이코스"라는 말을 듣고 좋아라 했던 TV CF가 한창이었다. 참고로 라이코스는 현 네이트가 흡수한 검색엔진 웹사이트다

다행히 고등학교를 특목고에 진학하며 초등, 중등시절 어울리던 친구들과 떨어져 완전히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제 2의 인생을 살 기회를 얻었다.

고1때에는 스스로 트라우마를 이겨내보려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갈 것 같은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 노력했는데 사람의 본성은 어딜 가지 않는다고 역시나 나는 그냥 찌질한 남자일 뿐이었다. 한번은 그 친구에게 전화가와서 “야 니가 내 꼬봉이냐!?” 라고 하길래 무슨소리냐고 물었더니 여자애들이 그 친구와 같이 다니던 나를 꼬봉으로 보고있다며 아니란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전화를 했다는거였다. 그도 그럴것이 수업시간에 그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그 친구가 교실 뒤로 나가 벌을 서게 되었는데 내가 “저도 같이 장난쳤습니다”라고하며 스스로 같이 벌을 섰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우정을 지키는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찌질한 행동도 없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고있자니 여자애들은 충실한 부하가 하나 생긴 줄 알았나보다. 여전히 나는 ‘라이코스’였다.

그냥 내 자신을 인정하고 나의 잣대로 살아가면 되는데 그 시절엔 왜그렇게 남의 눈을 신경 썼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는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이었을 정도.

물론 고등학생 시절 전부를 그렇게 보낸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1학년 1학기때만 찌질하게 꼬봉소리나 들으며 지냈고 나머지 시간은 좋은 친구들을 만나 조금은 나 자신을 좋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와는 정 반대의 성격인 친구를 만나 사람은 각자 잘하는게 있고 또 못하는게 있고 그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또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를 만나 공통된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되었고 내 얘기를 늘 잘 들어주는 친구를 만나 고민거리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 전까지 내 인생은 그런 기본적인 것도 없는 인생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법을 그때 배운 것 같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며 모두가 내 친구들처럼 날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업무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여전히 인간관계에는 서툴렀다. 특히나 상호이익관계에서는 늘 나는 이용당하는 입장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배운 것이 지금의 내가 가장 안좋아하는 모습이다. 불리한 상황이 되면 화내고 정색하며 내 찌질한 본성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가려주는 행동. 따지고 보면 더 안좋은 모습으로 가리고 있는 것 뿐인데 대학, 군대, 회사생활을 하며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더 큰소리를 내며 ‘나 건드리지마!!’라는 표현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수직관계에 있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있고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리는 일이 없어서 많이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조금만 불리해도 정색하고 버럭하며 고집을 부릴때가 많다.

두람이와 도형이와 가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한다.

‘우리도 늙으면 우리 아버지처럼 꼰대가 될까?’

아마 그렇게 될 확률이 클 것이다. 지금 초등학생들의 사고방식조차도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는 지경인데 준이가 크면 클수록 내 뇌도 유연함을 잃고 어느새 과거의 경험에 얽메여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저 꼰대로 취급될 것이다.

나는 남들처럼 나와 똑 닮은 아이을 갖고싶지가 않다.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더 나은 인생을 만들어주고 싶다.
타고난 본성은 유전이 될 수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역시 육아는 환경이 제일 중요한 법!!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나의 안좋은 성격들부터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찌질함을 물려줄수는 없으니까말이다.

Hello World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다보면 항상 맨 처음 프로그래밍의 시작은 ‘Hello World’ 만들기다. 단순하게 내가 출력하고 싶은 메시지를 출력하는 것 부터가 시작인지라 여러 언어를 공부하다보니 Hello World라는 말은 나에게 있어 ‘어떤 일에 대한 출발점’을 표현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준이가 세상에 나온지 12일째다. 이틀동안 진통이 없어서 고생했던 시간을 합치면 2주의 시간이 흘렀다. 불과 2주 전 이 시간에 아무 생각없이 막달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덜컥 출산을 하자고 해서 많이 당황했었다. 지금은 다행히 아이도 아이 엄마도 모두 건강하게 회복중에 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아빠가 되어있었다.

진짜 육아의 시작도 이제 일주일이 남았다. 지금은 조리원에서 준이를 돌보고 있지만 다음주에 집에 오게 되면 먹이고 재우고 치우고 하는 모든 일을 참이와 둘이 해내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육아의 첫 걸음을 떼는 순간이 오는구나.

Hello World
안녕 육아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최선을 다 한다고 해서 잘 하는것도 아닌 것 같다. 무슨 다마고찌도 아니고 포켓몬도 아니고 진짜 한번뿐인 준이의 인생을 위해 내가 뭘 해줘야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책을 봐도 조언을 들어도 결국 직접 해내야하는 일이니까. 막막하기만 하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할 때 아무 개념이 없이 시작을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가령 그림을 그린다고 치자. 대략적인 형태를 잡고 선을 정리해가며 스케치를 하고 덩어리를 잡아주고 부분묘사를 들어가는 흐름이라는게 있는데 무슨 프린터기 마냥 맨 위 좌측부터 쭉쭉 완성하면서 그리라고 한다면 정말 막막할 것이다.

지금 내 상태가 그러하다. 육아를 해야하는데 큰 흐름을 모르겠다. 아니 알고는 있는데 머리가 하얗다. 그리고 내가 알고있는게 정답일리도 없다. 모든 아이는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상황대처능력과 인성을 두루두루 갖추어야하는데 내가 그런 준비가 됐을리 만무하다. 나도 아직 성장 중인걸…

뭐 이래나 저래나 결국 일주일 후면 준이의 육아는 시작될테고 도망갈수도 없다.

그러니 최선을 다 해 볼 생각이다.

최선을 다 한다고 잘 키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냥 멍때리는 것 보단 나을테니까. 우선 큰 목표는 하나다. 준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 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 그거면 된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인생을 허비하며 살아가는 모습 만큼은 보기 싫다. 그런 인생을 만들어주고싶지 않다. 사람은 늘 자신과 함께 한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어있다.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진리. 피를 통해 아이의 성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길러주신 부모 친구 이웃들에 의해 성격과 성향이 만들어진다.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 준아.

p.s. 내 컬렉션은 건드릴 생각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