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시작

어제 준이가 집에 왔다.

처음으로 유리창을 통하지 않고 직접 볼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안아도 보고 쓰다듬어보니 새삼스레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인지되었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울면 먹이고 기저귀갈고 재워도보고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밤 늦게 장모님 장인어른이 오셨다. 보름동안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준이를 위해 장모님이 보름동안 함께 생활하며 준이를 돌봐주시고 장인어른도 목포에서 혼자 생활하시기로 했다. 너무나 감사하고 감동이다.

덕분에 이것 저것 배울 수 있게 되었고 내 시간을 조금 더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장모님이 가시면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도 많이 줄어들테니까 밀린 작업들을 보름동안 빨리 끝내놔야할 것 같다.

오늘은 일하러 나간 사이 준이가 쾌변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 온 뒤로 방귀만 뿡뿡뀌고 똥을 안싸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황금색 건강한 똥을 시원하게 싸질렀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참이 앞에선 태연한 척 하지만 나도 이래저래 준이에게 이상이 있을까 늘 걱정이다. 그래도 나는 이왕이면 준이를 강하게 키우고 싶다. 요즘 맘충이라는 엄마들 보면 아이를 너무 약하게 키우는 것 같다.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는, 모든것을 부모가 처리해주는 (그러면서 정작 부모로서 해야할 일은 안함) 그런 비정상적은 부모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준이를 어릴 때 부터 ‘개념’을 잘 탑재해주려한다.

안그래도 계속 젖병으로 미리 유축해놓은 모유를 먹다보니 직접 젖을 물리면 잘 안빨려고한다. (직접 빠는게 조금 더 힘든 모양) 젖병으로 먹이면 간단히 해결 될 문제처럼 보이지만 짜서 바로 먹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후 먹이기 때문에 영양소가 조금은 파괴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소독은 하지만 아무래도 인공적인 실리콘을 빠는 것 보단 직접 빠는게 위생상 좋다. 가장 큰 것은 간편함이다. 엄마가 아이 밥먹일라고 하루전날 냉동실에서 꺼내서 냉장실에 넣어두고 또 50도 정도 되는 물에 담가서 데워서 줘야하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직접 수유를 하면 울면 물리면 끝난다. 온도도 영양도 적당하다. 서로에게 윈윈인 일인데 아이는 늘 쉬운 길을 선택하려한다. (당연하겠지)

일단은 조금씩 젖을 직접 물리는 시간을 늘려보려하는데 15분정도 물고나면 더이상 힘들어서 안빤다. 정 안되면 조금 굶기는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배고프면 힘들어도 빨테니까… 마음이 아프지만 최후의 방법이다. 그 전에 잘 빨기를 바라는 수 밖에… 아이 굶는거 지켜보는게 힘들어서 보통 엄마들은 그냥 포기하고 젖병을 물리는 길을 선택한다고한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라 하는데 까진 해봐야한다.

점점 나아질거라 믿는다. 준이 화이팅!! 참이도 화이팅!!

P.S. 사실상 나는 수유에 관해선 도와줄게 없다ㅠㅠ 대신 다른거 많이 도와줘야징ㅋ

엄마를 닮아서 다행이야

성격적인 부분이야 키우면서 고민해야하는것이지만 외모는 나오면 그걸로 끝이라 잘 나오길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성형에 대해 극도로 거부감이 있어서 쌍커플수술조차도 안좋게 생각하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만드는건 아에 생각도 안했다.

다른 부분은 다 걱정이 없지만 눈은 날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이녀석 눈이 엄청 크다. 태어나자마자 몇시간 후에 바로 눈을 떴는데 눈이 커서 마음 깊이 안도했었다.

키는 사실 작아도 별 신경 안쓰인다. 내가 평생을 작게 살아보니 불편한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170만 넘으면 무난하다고 생각이 든다. 뭐 더 작아도 상관 없음.

지금 조금 걱정되는 부분은 머리카락이다. 나를 닮아 M자형 머리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모든 면에서 외모는 다 엄마를 닮았으면 좋겠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나를 참 안좋아한다. 성격뿐만이아니라 외모도 그닥 자기애가 없다.

그래서 첫인상이 엄마를 똑 닮아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성격도 유전인가?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작고 약하고 겁많고 소심한성격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늘 우두머리(?)를 쫓아다니는 시다바리짓을 많이 했다. 심지어 중학생 때는 일진 애들한테 끌려다니며 ‘라이코스’라는 참신한 별명까지 얻게되었다.

개 한마리가 주인이 시키는 것을 착실히 이행하고 "잘했어 라이코스"라는 말을 듣고 좋아라 했던 TV CF가 한창이었다. 참고로 라이코스는 현 네이트가 흡수한 검색엔진 웹사이트다

다행히 고등학교를 특목고에 진학하며 초등, 중등시절 어울리던 친구들과 떨어져 완전히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제 2의 인생을 살 기회를 얻었다.

고1때에는 스스로 트라우마를 이겨내보려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갈 것 같은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 노력했는데 사람의 본성은 어딜 가지 않는다고 역시나 나는 그냥 찌질한 남자일 뿐이었다. 한번은 그 친구에게 전화가와서 “야 니가 내 꼬봉이냐!?” 라고 하길래 무슨소리냐고 물었더니 여자애들이 그 친구와 같이 다니던 나를 꼬봉으로 보고있다며 아니란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전화를 했다는거였다. 그도 그럴것이 수업시간에 그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그 친구가 교실 뒤로 나가 벌을 서게 되었는데 내가 “저도 같이 장난쳤습니다”라고하며 스스로 같이 벌을 섰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우정을 지키는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찌질한 행동도 없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고있자니 여자애들은 충실한 부하가 하나 생긴 줄 알았나보다. 여전히 나는 ‘라이코스’였다.

그냥 내 자신을 인정하고 나의 잣대로 살아가면 되는데 그 시절엔 왜그렇게 남의 눈을 신경 썼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는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이었을 정도.

물론 고등학생 시절 전부를 그렇게 보낸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1학년 1학기때만 찌질하게 꼬봉소리나 들으며 지냈고 나머지 시간은 좋은 친구들을 만나 조금은 나 자신을 좋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와는 정 반대의 성격인 친구를 만나 사람은 각자 잘하는게 있고 또 못하는게 있고 그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또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를 만나 공통된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되었고 내 얘기를 늘 잘 들어주는 친구를 만나 고민거리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 전까지 내 인생은 그런 기본적인 것도 없는 인생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법을 그때 배운 것 같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며 모두가 내 친구들처럼 날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업무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여전히 인간관계에는 서툴렀다. 특히나 상호이익관계에서는 늘 나는 이용당하는 입장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배운 것이 지금의 내가 가장 안좋아하는 모습이다. 불리한 상황이 되면 화내고 정색하며 내 찌질한 본성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가려주는 행동. 따지고 보면 더 안좋은 모습으로 가리고 있는 것 뿐인데 대학, 군대, 회사생활을 하며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더 큰소리를 내며 ‘나 건드리지마!!’라는 표현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수직관계에 있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있고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리는 일이 없어서 많이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조금만 불리해도 정색하고 버럭하며 고집을 부릴때가 많다.

두람이와 도형이와 가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한다.

‘우리도 늙으면 우리 아버지처럼 꼰대가 될까?’

아마 그렇게 될 확률이 클 것이다. 지금 초등학생들의 사고방식조차도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는 지경인데 준이가 크면 클수록 내 뇌도 유연함을 잃고 어느새 과거의 경험에 얽메여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저 꼰대로 취급될 것이다.

나는 남들처럼 나와 똑 닮은 아이을 갖고싶지가 않다.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더 나은 인생을 만들어주고 싶다.
타고난 본성은 유전이 될 수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역시 육아는 환경이 제일 중요한 법!!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나의 안좋은 성격들부터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찌질함을 물려줄수는 없으니까말이다.